[리버스 1999 설정고찰] 먼 곳의 친구 시리즈에 대하여
<쥘 리메 컵 도난 사건>, <삭일수기>, <안녕, 라야시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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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의 친구> 시리즈.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버전 1.1 <쥘 리메컵 도난 사건>과 버전 1.8 <안녕, 라야시키>는 공식적으로 이 시리즈에 속해 있으며, 버전 1.6 <삭일수기> 또한 중국 서버 업데이트 당시 제작진 방송으로 해당 시리즈임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이 시리즈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을 통해 해당 시리즈의 특성과 이것이 세계관에서 함의하는 의미를 밝혀보고자 합니다. 아울러, 이를 통해 버전 2.6(챕터 9 <광기의 역사>)이 메인 스토리보다는 <먼 곳의 친구> 시리즈에 가깝다는 의견 또한 제시하려 합니다.

‘먼 곳의 친구‘란?

[그림 1] 먼 곳의 친구 시리즈의 로고. 우르드가 사진의 글에 사용하는 로고이기도 함.

[그림 2] 버전 1.1 <쥘 리메 컵 도난 사건>의 배너

[그림 3] 버전 1.8 <안녕, 라야시키>의 배너

[그림 4] 이벤트 엔딩 에필로그 우편이 <먼 곳의 친구> 명의로 발송된 것을 보여주는 스크린샷

<먼 곳의 친구> 시리즈와 함께 따라오는 것이 바로 컴퍼스처럼 생긴 도구를 형상화한 원형의 로고입니다. 이 로고는 비단 <먼 곳의 친구>와 관련된 내용뿐만 아니라 우르드(마르타와 닥터 도레스)가 글을 쓸 때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 로고를 우르드가 쓴다는 것은 우르드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겠죠. 여기서부터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우르드와 <먼 곳의 친구> 시리즈의 공통점을 생각해보기 위해, 리버스: 1999의 각 버전을 간단히 분석해보고자 합니다. 다음 표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메인 스토리 6장과 7장에서 빈의 화자는 마커스, 아페이론 섬의 화자는 버틴입니다.

[표 1] 리버스: 1999에서 버전 2.8까지 추가된 스토리를 정리한 표

위 틀은 리버스: 1999에서 버전 2.8까지 추가된 25개 장 분량의 메인 스토리와 이벤트 스토리를 정리한 표입니다. 특히 ‘화자’ 항목은 일련의 이야기가 버틴에게 보고된 경로를 설명합니다. 리버스: 1999에서 플레이어는 버틴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접합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플레이어가 접하는 모든 이야기는 버틴이 접하는 이야기라는 뜻이 됩니다. 버틴이 직접 있었던 이야기라면 자기 자신이 접한 것이니 특별히 논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버틴이 등장하지 않는 스토리라면 화자가 누군지는 고민해야 할 지점이 됩니다. 다행히, 대부분의 이야기에는 최소 재단 측 인물이 한 명 이상 등장하고는 합니다. 이들의 시선을 통해 버틴이 일련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는 것이죠. 대표적인 예시로 버전 2.3 <울루루: 연대기: 런던의 여명>의 투스 페어리나 버전 2.5 <차이나타운 무비>의 양월이 있습니다. 이 점을 고려해 ‘화자’ 항목을 더 채워나가다 보면 상당수의 칸을 다 채울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빈칸을 채우면 3개의 버전이 남습니다. 버전 1.1 <쥘 리메 컵 도난 사건>, 버전 1.6 <삭일수기>, 버전 1.8 <안녕, 라야시키>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세 버전은 모두 <먼 곳의 친구> 시리즈입니다. 세 이야기에는 그 어디에도 재단 측 인물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를 고려할 때, 해당 시리즈에서 이야기의 화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 이야기가 버틴에게 도달한 경로를 고려해 봅시다.

우선 버전 1.1 <쥘 리메 컵 도난 사건>과 버전 1.8 <안녕, 라야시키>를 생각해 봅시다. 두 이야기에서는 공통적으로 맹인이며, 이야기를 쓰고, 타자기를 들고 있는 미상의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야기 도입부에 해당 로고가 등장합니다. 메인 스토리 챕터 8 <슬픈 열대>에서도 이 로고가 등장한 적이 있으며, 글을 쓰던 여인은 닥터 도레스, 즉 우르드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로고는 우르드의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논의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버전 1.6 <삭일수기>의 경우 이야기가 조금 다릅니다. 버전 1.1과 1.8과 다르게, 우르드가 등장하지 않고 해당 로고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먼 곳의 친구> 시리즈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제작진이 위와 같이 중국 출시 1주년 기념 방송에서 버전 1.6이 해당 시리즈라고 인증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삭일수기>는 왜 이 시리즈인 것일까요?

힌트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바로 우편함입니다. 버전 에필로그 우편처럼 이야기가 종료됨을 안내하는 우편은 ‘먼 곳의 친구’ 명의에 위 로고 스탬프가 찍힌 채로 발송됩니다. 이 우편 내용에는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더 자세히 들여다 봅시다.

위에서 언급한 버전 2.5 <차이나타운 무비>처럼 통상적인 버전의 경우, 화자(‘먼 곳의 친구’)는 이 이야기를 버틴에게서 편지를 통해 전해받은 것처럼 표현합니다. 하지만 <먼 곳의 친구> 시리즈인 버전 1.8 <안녕, 라야시키>의 경우, 그런 언급 없이 오히려 버틴이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처럼 표현됩니다. 버전 1.1과 버전 1.8의 화자가 우르드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위의 주장처럼 ‘먼 곳의 친구’의 정체는 우르드이고 버틴은 우르드로부터 버전 1.1과 1.8 일련의 이야기를 전해들었다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버전 1.6의 경우 조금 다릅니다. 버전 1.6의 에필로그 우편을 보면 오히려 통상적인 버전의 우편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버전 1.6 <삭일수기>에는 우르드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역시 노른인, 그리고 버틴의 재탄 전 형태로 보이는 베스머트가 등장합니다. <삭일수기>가 먼 곳의 친구 시리즈로 분류된 것은 오랫동안 묻혀 있던 이야기를 우르드가 꺼내 버틴에게 들려 줬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베스머트가 등장하기 때문에 <삭일수기>는 첫 번째 폭풍우 이전일 수밖에 없습니다. 첫 번째 폭풍우가 도래하기 이전에 이미 베스머트가 버틴으로 재탄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예니세이가 19세기 인물이고 그 이전에 특별히 폭풍우처럼 시대의 불연속성이 존재했다는 묘사는 없었으므로, <삭일수기> 이야기는 실제로 그렇게 오래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우르드가 이 이야기를 발굴해 버틴에게 전해 주었고, 그래서 <먼 곳의 친구> 시리즈로 분류되었다고 봅니다.

정리하자면, <먼 곳의 친구> 시리즈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습니다.

챕터 9 <광기의 역사>에 대해

위에서 이야기한 것을 통해 챕터 9에 대해서 조금 논해보고자 합니다. 리버스: 1999 버전 2.6 업데이트로 추가된 메인 스토리 챕터 9 <광기의 역사>는 완성도와 별개로 메인 스토리보다는 이벤트 스토리에 가깝다는 평을 받곤 했습니다. 되려 버전 2.4 <지구에서의 마지막 밤>이 더 메인 스토리답다는 평이 따라붙었죠. 여기서 할 이야기도 그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챕터 9 <광기의 역사>는 버틴과 소네트가 등장하는 메인 스토리라는 점에서 기존의 챕터와 맥을 같이하나,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구석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버틴과 소네트가 주역으로 활약한다기보단, 카밀라 교도소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관찰자의 역할이 두드러진다고 봅니다. 오히려 버틴과 소네트 대신 레콜레타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편입니다. 혹자는 심지어 버틴과 소네트가 아예 빠져도 이야기가 성립할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저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버틴과 소네트를 이야기에서 제외하고, 챕터 9을 이벤트 스토리로 바꾸면 <먼 곳의 친구> 시리즈로 손색이 없다는 점입니다. 카밀라 교도소의 일화는 레콜레타가 주도하고, 우르드가 버틴에게 그 이야기를 편지로 부쳐 주는 것이죠. 이야기를 조금만 고치고, 우르드가 타자기로 이야기를 치는 묘사를 넣고, 배너에 <먼 곳의 친구> 시리즈를 표기하면 끝입니다. 다만 블루포치의 내부 사정으로 <먼 곳의 친구> 시리즈가 아닌 메인 스토리가 되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렇게 된 상세한 이유는 불명입니다. 마음같아서는 블루포치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고 싶지만(겸사겸사 버틴 관련 설정도 보고 오고요…), 아쉽게도 그건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저 아쉬움으로 남겨야 합니다. 다만 블루포치가 지금까지 스토리에서 보여온 꼼꼼함을 고려할 때, 이 결정이 주먹구구식으로 내려지진 않았으리라 확신합니다.